Work Text:
한때 행성 전역에 적의 비명이 울려 퍼지도록 하는 것을 자부심으로 삼았던 자는, 죽어가는 별과 함께 울었다.
어떻게 그렇게 명백한 기만에 속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나 순진할 수 있었을까? 우리 모두가, 어떻게 그 터무니없는 기만에 속을 수 있었을까? 평생 단 한 번도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던 자신이, 철저한 규율과 질서로 규합된 하이가드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프라이머스께서 선택한 프라임이, 어떻게 모두 그 뻔뻔한 배신자에게 속을 수 있었을까.
스파크를 바쳐 수호해야 했을 프라임들이 스러진 이후로 그는 단 하루도 그 순간의 악몽을 꾸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꿈은 으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센티넬의 제안에 따라, 적진으로 향하는 프라임들을 배웅하는 하이가드의 모습. 그 한가운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미련하게 서 있는 그 멍청한 군인을 보면, 스타스크림은 구역질이 났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호소했다. 제발 멈추십시오, 센티넬이 배반했습니다, 그 거짓말쟁이가 적과 내통했습니다, 그 앞에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울음 섞인 비명은 단 한 번도 프라임들에게 닿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과거의 스타스크림은, 순진하게도 자신이 모든 걸 꿰뚫어보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그 헛똑똑이는, 언제나처럼 자부심과 믿음으로 가득한 웃음을 짓고 경례를 올리며 프라임들의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을 배웅할 뿐이었다. 별이 진동하도록 내지른 스타스크림의 비명은 그 자신의 스파크를 제외하면 그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프라이머스여, 우리를 도와주소서.
하이가드의 스타스크림을 표현하는 수많은 단어 중에 독실함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스타스크림은 기도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기를, 그 후회스러운 순간을 되돌릴 수 있기를, 만회할 수 있기를. 그들의 죽어가는 별을 구원해 주시기를. 스러진 프라임들을 돌려주시기를. 배반자 센티넬에게 저주가 내려지기를. 천벌이, 아니 비정하고 엄혹한 복수가 그 낯짝 두꺼운 배반자를 으스러뜨리기를. 그 기만적인 자가 제 죄악에 짓눌려 무너지기를. 꿈에서 그는 기도했다. 일어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지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그 친숙한 악몽으로부터 일어나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프라이머스는 이번에도 응답하지 않았고, 사이버트론은 여전히 죽어가고 있었다. 에너존이 메마른 별에는 탄식이 가득했고, 그들이 몸을 바쳐 지켰던 고향은 저 멀리, 배반자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프라이머스여, 저희를 인도해 주소서.
언젠가 하이가드의 누군가가 그렇게 기도했다. 한두 명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힘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만연해서, 프라이머스처럼 신적인 존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으니.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누구도 기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프라이머스께서 정말로 우리를 돌봐주신다면, 그분께서 선택하신 프라임들이 고작해야 그런 배반자 따위에게 쓰러질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들의 고향이 이렇게 메말라 죽어갈 리가 없지 않는가, 우리를 이토록……. 버려두실 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충성스럽게, 신실하게, 진심을 다해 프라임을 수호했거늘. 프라이머스는 그들의 기도를 듣지 못하시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프라임을 지켜내지 못해 프라이머스가 그들에게 징벌을 내린 것이라면, 어차피 기도해도 소용없을 것이었다…….
소용없어. 소용없어. 소용없어.
아마 배반자 센티넬이 원하는 것도 그것이었으리라. 하이가드를 잡아서 죽이거나,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들이 실의와 패배주의에 빠져 절망한 채로 가동을 멈추고 고철 쓰레기로 녹슬어 가도록 몰아붙이는 것. 어느 쪽이든, 그 알량한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 데에는 방해일 뿐인 그들이 영영 나타나지 않고 기록보관소의 조작된 역사에 짤막하게 언급되는 채로 추후에는 누구도 찾아보지 않는 잊혀진 역사로 전락하는 것. 세월의 풍파에 파묻혀 사라지는 것.
배반자의 애완 거미가 집요하게 추적해 오는 동안, 하이가드 역시도 조금씩 그 수가 줄어들었다. 하이가드가 배반자 산하의 그 우둔하고 약해빠진 군대를 상대하지 못할 리야 없지만, 센티넬에게는 아이아콘의 무한한 자원이 있다. 반면 하이가드는 충원은커녕 재보급조차도 기대할 수 없는 도망자들에 불과했으므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피해가 조금씩 누적되면 하이가드는 끝끝내 절멸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가드의 스파크가 그 빛을 잃는 순간, 센티넬은 그들의 이름 역시 자신을 포장하는 싸구려 포장지로 써먹고는 내팽개쳐 버리리라. 그가 죽은 프라임들에게 그러했듯이.
스타스크림은 그 미래를 용납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통수권자와 지켜야 할 고향은 물론, 사이버트론 최정예 부대라는 하이가드의 자부심조차도 잃어버린 이 패잔병 집단을 이대로 둔다면 그들 모두가 센티넬이 원하는 것처럼 멸종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그래서 스타스크림은 가장 먼저 일어나 동료들을 규합했다. 순식간에 기존의 편제와 체계가 무너지며 신병처럼 우왕좌왕하는 얼간이들을 윽박지르고, 프라이머스를 찾으며 우는 바보들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었다. 하지만 스타스크림, 하고 각양각색의 의견들을 떠들어대는 놈들에게 널레이를 겨누고 입을 다물게 했다.
의견이라는 명목으로 내세운 그 우는 소리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언제부터 그들이 의견 따위를 내세웠단 말인가? 하이가드에 규율이라는 것이 남아 있었을 적, 그들에게 자부심이 남아 있을 때 그들은 이런 쓸데없는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군인의 미덕대로, 그들은 충성했다. 복종했다. 상부의 명령을 철저하게 수행했다.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센티넬이 그 토양을 파고들어 독을 흩뿌릴 때는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했던 그들이, 무슨 낯으로 이제 와서 의견을 내놓는단 말인가?
“모두 입 다물어. 이제부터 나, 스타스크림이 하이가드를 통솔한다.”
“비합리적. 스타스크림: 근거 제시 필요. 하이가드 규정 제153-”
“낡은 규정은 집어치워! 그건 아이아콘의 법이야. 이젠 센티넬의 법이지. 배반자의 법. 기존의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 긴급 상황에는 새로운 규율이 필요하다.”
그 급진적인 선언에 순식간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스타스크림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내세우는 규칙은 간단해. 승자가- 정의다.”
스타스크림의 말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운드웨이브나 쇼크웨이브는 물론, 온갖 잡스러운 의견을 내뱉던 바보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이 하나만큼은 말이 통해서 좋군. 스타스크림은 차가운 눈으로 동지들을 돌아보고는 선언했다.
“치욕스러운 일이지만 우리의 적은 강대하다! 저 배신자 센티넬은 아이아콘의 모든 자원을 손에 쥐고 있으므로, 우리는 절대적인 수적 열세에 놓여 있으며 최소한의 인명 손실조차도 치명적인 작금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저 찢어 죽여 마땅할 배반자를 처단하려면 낡은 관습은 집어던져야 해!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강한 자가 우리를 이끌어야 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이끌고 보호하고,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전력으로 봉사해야 한다! 그래야만 저 강대한 적에 맞설 수 있어!”
“…….”
“그러니까, 가장 강한 내가 하이가드를 이끌겠다. 혹시라도 내 의견이 불만이 있는 놈은 지금이라도 덤벼. 날 이겨 봐라. 그러면 내가 복종할 테니, 알아서 하이가드를 이끌면 돼. 지원자 있나?”
스타스크림은 도전을 각오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사운드웨이브나 쇼크웨이브라면 꽤 까다로운 상대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만 제압한다면 하이가드는 누구도 그의 권위를 의심하지 않으리라. 그 사운드웨이브와 쇼크웨이브조차도 이기지 못한 스타스크림을 감히 얕볼 생각은 하지 못할 테니.
하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사운드웨이브나 쇼크웨이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의문을 제기했던 사운드웨이브조차도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차피 저 둘은 본디 앞장서서 타인을 통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괜히 권위에 도전하여 우위를 확실히 하느니 스타스크림을 보좌하여 표류하는 하이가드를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스타스크림과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는 하이가드의 생존과 센티넬에 대한 복수를 갈구하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없나? 좋아.”
스타스크림은 차가운 눈으로 하이가드를 흘겨보곤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굳은 표정을 한, 그러나 하나같이 복수에 목마른 형제들의 눈이 그에게 향해 있었다. 그들은 이제야 좀 패잔병 찌꺼기가 아닌 하이가드처럼 보였다. 설령 그 이름은 이제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날 허울뿐인 유물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했더라도.
그렇지만 거기까지가 스타스크림의 한계였다.
스타스크림은 하이가드가 절망에 빠져 무너지지 않도록 군단의 사기를 유지했고, 새로운 규칙으로 조직의 풍기가 문란해지는 것을 막았으며, 원수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으고 동지들을 배반자와 거미의 손아귀로부터 숨기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시커는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서 큰 그림을 파악하여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존재들이었고, 시커의 일원인 스타스크림의 전술적 판단 역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 보이는 지표는 하이가드를 단 두 개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느리고 무기력한 죽음과 빠르고 급격한 죽음.
그럴 수는 없었다. 정말로 그럴 수는 없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하이가드의 그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스타스크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죽는 것은 두려웠다.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하이가드였던 그들이 일개 도망자 집단으로 전락했던 것은, 그 고고한 자부심을 진흙에 처박고 비참하고 치졸한 방식으로 목숨을 부지한 것은 그런 무가치한 죽음을 맞이하고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잊혀지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끝나고 싶지 않았다. 그와 형제들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초라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분루를 삼키며 고향을 등진 것이 아니었다…….
프라임이 있었다면 내게 길을 알려주었을까? 매트릭스를 가진 프라임이 있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무수한 고뇌와 절망의 밤을 보내며, 스타스크림은 생각했다. 그리워했다. 고향을 그리워했고, 하이가드의 영광을 그리워했으며, 누군가 그들을 통솔해 주었던 과거를 그리워했다. 그 순진한 믿음으로 가득한 안온한 시절을 그리워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자신들을 대신해 더 나은 선택을 내려줄 타인을 믿고,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하면 되었던 과거를.
하지만 파르라니 동이 터 오면, 스타스크림은 그 모든 연약한 마음을 버리고 차가운 분노와 끈적한 악의로 마음을 담금질하고 복수의 순간을 기획했다. 모두 부질없었다. 프라임이 어떻게 그들을 이끌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내부의 배반자 하나 알아차리지 못해 그들 자신과 행성 전체를 절망으로 몰아넣은 그 나약한 이들이 무엇을…… 알까. 그들은 모를 것이다.
누구도 나의,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으로 그런 불경한 마음을 품었던 순간 스타스크림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죄책감을 느끼며 계속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은 프라임에게 사죄의 말을 짜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결국 하이가드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약육강식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그 논리 속에서 프라임은 결국 약해서 배반자에게 먹힌 자들이었다. 그들의 유약함으로는, 어차피 센티넬이 아니었더라도 오래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아콘의 영광스러운 최정예부대 하이가드의 스타스크림은 절대로 그런 불경한 마음을 품지 않았을 테지만, 사이버트론 표면의 패잔병 게릴라 군단의 수장 스타스크림은 그런 생각을 했다. 하늘로 비상하여 음속으로 내달릴 때, 발밑으로 보이는 죽어가는 별의 비명을 들을 때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답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글쎄, 적어도 스타스크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수십 사이클 동안 그의 믿음은 깨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느날 그의 발치로 끌려온 도전적인 눈빛의 애송이는 그의 냉소적인 믿음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건, 뭐라고 해야 할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꽤 괜찮았다. 아니……. 즐거웠다. 이보다 더 살아 있음을 강하게 느꼈던 순간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돌이켜 볼 정도로.
“때려 봐! 때려 보라고!”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을 외쳤을까? 음성 케이블이 우악스럽게 짓눌려 망가지는 순간에도, 스타스크림은 크게 웃으며 외쳤다. 수십 사이클 만에 처음으로 게릴라전이나 추적 임무 따위가 아닌, 전투다운 전투를 하게 되었다는 고양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렇지도 않게 너는 틀렸다고 선언하는 그 패기 넘치는 애송이에게 감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이미 분노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 철없는 애새끼는 냅다 달려들어 주먹질을 하고 아마도 온전히 그를 향한 것만은 아닌 날것 그대로의 분노를 토해냈지만, 그 분노는 어디까지나 미숙했다. 결국 그 애송이는 타인의 스파크를 제대로 꺼트려 본 적도 없는 어린애에 불과했다. 그 주먹질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 애송이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린애처럼 씩씩거리고, 머리를 부딪히고, 화풀이를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녀석에게는 가능성이 있었다. 젠장, 그가 고향에 있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을 그대로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아콘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물론 센티넬 그 말만 번지르르한 멍청이한테 속고 있지, 그래. 그 바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으랴.
그렇지만 그 녀석에게는 보이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아직 긁힌 자국 하나 없는 매끈한 장갑이 아닌, 어린 티를 채 벗지 못한 그 말간 얼굴이 아닌, 그럴싸한 껍데기가 아닌, 그 샛노란 옵틱 안에 깃든…….
순수한 분노.
그 애송이가 격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손을 뻗은 순간, 아, 그 거대한 캐논이 뺨에 닿은 순간, 스타스크림은 진심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그 격정적이고 뜨거운 분노가 그를 녹여버릴 것만 같았다. 그 열기에 타버릴 것만 같았다.
살려달라고 빌면서도, 스타스크림의 스파크는 타오르고 있었다. 모든 하이가드의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지도자가 아닌 군인의 운명을 부여받은 전사의 혼은 환희로 고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래, 이게 진정한 싸움이다. 센티넬 따위에게 개처럼 쫓겨 천천히 피해가 누적되는 것이 아닌, 전신의 회로를 일깨우는 이 자극이, 직면한 죽음의 공포야말로 진정한 전사를 위한 것이었다. 그 영광스러운 죽음이야말로 모든 하이가드가 바라 마지 않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바라던 것은 이토록 간단했거늘.
그렇지만 스타스크림은 비굴하게 살아남았다. 이번에도, 그는 전사로 죽지 못했다. 허나 살아남았다는 수치심보다도, 스타스크림은 그 강렬한 불꽃에 매혹당했다. 눈앞에서 꽃이 피어나듯 원석에 불과했던 어린애가 피어나고 있었다. 제가 무엇을 한 것인지조차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던 그 안광이 짙어지더니 갈 길을 잃은 분노와 정제되지 않은 살의가 가라앉으며 의지와 복수심이 타오른 순간, 그 애송이가 복수를, 부르짖은 순간.
아.
스타스크림은 수십 사이클 만에 처음으로, 모두에게 자신의 등을 보여주며 그들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끌고자 하는 누군가의 거대한 등을 보고 있었다. 메가트로너스 프라임? 아니, 아니야. 죽은 프라임에게는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 애송이는 프라임과 닮지 않았다. 그 애송이에게 프라임을 비교하는 것조차도 모욕일 터였다.
물론 스타스크림의 논리 회로와 기억 저장 모듈에 탑재된 경험들은 스파크의 끌림을 곧장 따르지 않았다. 이제 갓 가동을 시작한 애송이도 아니고, 직관만으로 비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는 부관들처럼 합리주의와 확률만으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감만 믿고 움직일 정도로 분별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전략적인 판단이야. 갑작스러운 적군의 습격에 기지가 혼란에 빠지고, 애송이가 거미에게 붙잡혀 갈 때 은근슬쩍 거동이 어려운 것처럼 가장하고 함께 끌려간 순간까지도, 스타스크림은 이것이 그 애송이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모으기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했다. 그걸 알아차렸는지는 몰라도, 사운드웨이브는 그와 옵틱이 마주치고도 그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글쎄,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어쨌든 누군가는 붙잡혀 간 하이가드를 규합해 이끌어야만 했다. 그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또한 그 순간에는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어쩌면 스타스크림은 자신이 따라가지 않아서 그 애송이가 죽는 순간 익숙한 악몽의 바리에이션이 하나 더 추가될 뿐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후회는 이제 질렸다. 또다시 프라이머스에게 닿지 않는 기도로 호소하며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애걸할 순 없었다. 프라임을 돌려달라고 울면서 질질 짜고만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번이 그의 새로운 기회였다.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기회.
그리고 하이가드 전원이 덤벼들어도 이길 가망성이 없어 보였던 강대한 적 앞에서, 긍지 높은 하이가드조차도 비참한 죄인처럼 묶여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순간, 애송이는 일어났다.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 고개를 납작 조아리고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는 것만이 조금이라도 더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보였던 순간, 한때 고고한 하이가드라고 자부했던 자들조차도 일어나지 못한 순간, 그 녀석이…… 일어났다.
계속 일어나고, 또 일어났다.
짓밟히고, 모욕당하고, 끔찍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애송이는 꺾이지 않고 몇 번이고 일어나 뻣뻣하게 고개를 들었다. 부러지지 않았다. 강인하게 버텨냈다. 스타스크림은 그 등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그 등. 언제나 꿈꾸었던 등. 그들 모두를 이끄는 지도자의 등. 다시는 가질 수 없으리라고 믿었던…… 등. 스타스크림뿐만이 아닌, 끌려온 하이가드 모두가 그 등을 보았다. 그리고 이를 깨달은 순간, 스타스크림은 웃어버리고야 말았다.
젠장. 이래서야……. 저런 애송이에게 이 스타스크림이 완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
“로드 메가트론.”
스타스크림은 거대한 캐논 옆으로 드러난 손등 위로 입을 맞추었다. 차갑고 잔혹한 손. 전사의 손이었다. 이 크고 강대한 손은, 어떤 무기도 없이 배반자를 그대로 찢어 버렸다.
메가트론이 센티넬의 피로 세례를 마치고 새로운 이름을 외친 순간, 하이가드는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새로운 리더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프라임의 추방령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 비정하고 잔혹한 복수야말로, 하이가드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었으므로. 스타스크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직 메가트론만이, 하이가드를 위해 복수를 완수하고 기만의 시대를 끝낸 메가트론이야말로, 진정으로 그들 모두를 이끌 자격이 있었다.
프라이머스가 지정한 신성한 프라임 따위는 엿이나 먹으라지. 그들이 응당 받아내야 했을 복수를 앗아가려고 했던 낙관적인 몽상가 프라임도, 죽어가는 별과 그들의 비명과 간절한 기도를 묵살했던 프라이머스도, 하이가드의 헌신적인 봉사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를 편리하게 잊어버린 채로 센티넬이 제공하는 안락한 거짓 평화와 행복을 누렸던 아이아콘도, 더는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곧 메가트론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 모두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으며, 그들의 진정한 고향이자 집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메가트론은 그들의 통솔자인 동시에 잃어버린 고향이었고, 진정으로 소속되고 이해받을 수 있는 장소였으며, 가야 할 길을 여는 존재였다.
메가트론은 그 분노로 세상을 태워 정화할 것이다. 그리고 스타스크림은 정복당한 이들의 재 위로 새롭게 제국의 반석을 올리리라.
붉고 차가운 옵틱이 스타스크림을 응시하다가, 그 손끝이 스타스크림이 날개에 새로 새긴 표식을 어루만졌다. 메가트로너스 프라임의 상징, 아니, 이제는 메가트론의 상징이었다. 디셉티콘의 상징.
대부분의 하이가드는 그 상징을 스파크가 깃든 가슴 위에 새겨, 스파크를 관통하지 않는 한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흔적으로 남겼다. 그들이 스러지더라도, 그들의 가슴에 남겨진 상징은 그들이 디셉티콘으로 죽었음을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스타스크림은 그 상징을 가슴이 아닌, 날개에 남겼다. 메가트론은 그 상징을 만지고 있었다.
“상징을 여기에 남긴 이유라도 있나?”
“나는 당신의 항공사령관이니까요. 내 날개가 없다면, 나는 살아 있더라도 내 존재의 의의는 사라지고야 맙니다. 그렇다면 목숨은 붙어 있더라도 이 스타스크림의 스파크는 꺼진 것이나 다름없겠지요. 어찌 보면 죽음보다 더 비참한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 쓸모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
“디셉티콘의 표식이 이곳에 남아 있는 한, 하늘은 언제나 로드 메가트론의 철저한 지배 하에 놓일 것입니다. 적들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무엇이 자신들을 습격했는지 모를 테죠.”
‘적’을 언급하는 순간, 메가트론의 옵틱에서 잠시 붉은 빛이 흐릿해졌다. 스타스크림은 그 옵틱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고 빤히 응시하다가 유들유들하게 덧붙였다.
“로드 메가트론.”
그것은 부드럽게 달래는 목소리였지만, 동시에 악의와 독을 듬뿍 불어넣는 속삭임이기도 했다. 디셉티콘의 수장에게는 그런 연약한 감상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하물며 그 상대가 프라임이라면 더더욱. 메가트론에게는, 디셉티콘만 있으면 충분하다. 디셉티콘에게도, 메가트론만 있으면 충분하다. 프라임도, 프라이머스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의 주군, 당신의 적은 곧 나의 적. 프라임은 반드시 파멸할 것입니다.”
“그래.”
붉은 옵틱에 다시 빛이 돌아오며, 그 안은 언젠가 스타스크림이 꼭 별처럼 빛난다고 생각했던 강철 같은 의지와 세계를 태워 재만 남기고야 말 분노로 가득 찼다. 스타스크림은 눈매를 휘어 웃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대한 메가트론, 사랑스러운 메가트론, 당신에게는 그런 약한 모습은 어울리지 않아. 언제나 굳건하기를. 강인하기를. 무너지지 않기를.
스타스크림은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고는 물러났다. 메가트론은 결연한 눈빛으로 군단을 응시하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을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메가트론은 점점 더 하이가드의, 아니 디셉티콘의 수장에 걸맞게 벼려지고 있었다.
그가 건재하는 한,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스파크의 불빛이 꺼질지언정 절대 그 마음이 꺾이지 않을 것이다. 프라임과 함께 순장되어 잊혀진 역사로 전락해야 했을 하이가드는 이제 사이버트론에서 영원토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디셉티콘의 이름으로 메가트론과 함께 전설을 새롭게 써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는 어떤 기만도 없으리라. 그 자명한 미래를 그린 스타스크림은 웃음을 터뜨리곤 디셉티콘 군단의 동지들과 합류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죽은 자들의 꿈을 꾸지 않았다.
스타스크림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