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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와 남자와 뱀과 헤라클레스

Summary:

올림피아스와 남편의 일.

올림피아스는 남편과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 않고, 그를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Notes:

이것은 올림피아스에 관한 허구적 이야기이며, 어느 정도 플루타르코스에 기반했습니다. 또한 그에 대한 반론(인물의 동기 등)으로 현대 연구들을 조금 참고했습니다.
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신화의 소재를 차용했지만, 모든 것은 대체로 큰 의미가 없어요. (무책임한 발언이지만요)

Work Text:

꿈에서 나는 새였다. 나는 커다란 날개로 하늘을 가로질러 매일같이 바위산으로 향했다. 산에는 건장한 남자가 사슬에 묶여 있었다. 나는 그의 오른쪽 눈을 쪼아 먹었다. 남자는 포박된 채로 고통에 겨워 몸부림쳤다. 내가 그의 눈구멍을 파내고 피를 마시는 동안 그는 내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었다. 내가 그의 눈알을 다 먹으면 그날의 일과는 끝났다. 나는 남자를 뒤로하고 내가 있던 곳으로 날아갔다. 해가 지고 다시 뜨면 나는 남자에게 날아가 똑같은 짓을 반복했다. 남자는 고통스러워했고, 나는 그의 눈을 먹었다. 하루 또 하루. 그의 눈알은 다음 날이 되면 다시 자라나 있었다.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남자가 세상을 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라는 듯이. 어쨌든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매일같이 남자의 눈을 쪼아 먹었다. 매일같이 그의 오른쪽 눈알을 쪼아 먹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계속해서.

내가 그런 꿈을 꾼 건 아마도 필리포스가 내게 뱀 대신 다른 평범한 동물들, 이를테면 족제비나 오리, 강아지, 작은 새 같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 궁에 기거하는 동물의 종류까지 간섭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필리포스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 문제로 더 귀찮게 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생각에 몰두하는 게 하등 쓸모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 그 꿈에 대해 생각했다. 필리포스는 무엇을 훔쳤기에 바위산에 묶여 형벌을 받아야 했던 걸까? 나를 그에게 보낸 자는 누구일까? 나를 죽이러 헤라클레스가 찾아오진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나는 그 꿈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적어도 이런 꿈의 의미를 찾으려 누군가와 상담하는 것은 바보같이 느껴졌으므로. 그리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필리포스가 이 꿈을 좋아하지 않으리란 건 분명했다.

 

사실, 내가 뱀을 키우는 건 내가 뱀을 좋아하거나 어떤 주술적인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솔직히 발상이 퍽 유치했다는 건 인정하겠다.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태교 같은 거였다. 알렉산드로스를 임신했을 때, 나는 내 뱃속의 아들이 아주 건강하고 용맹하기를 바랐다. 마치 헤라클레스처럼. 그래서 곁에 독 없는 뱀을 몇 마리 풀어놓았다. 정신이 나갔단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는 짓이지만, 열일곱 살에 하는 행동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났고, 신기하게도 내 아들은 한 번도 뱀에게 물리지 않았다.

어린 알렉산드로스는⋯ 다리 없는 친구를 재밌어하긴 했으나, 뱀의 목을 비틀어 죽일 만큼 아귀힘이 세지 않았다. 그야 갓난아기였으니까. 어쨌든 나는 그때 데려온 뱀들을 굳이 없애지 않았고, 그들은 내 궁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필리포스를 사모트라케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내가 아주 적절한 여자라는 걸 첫눈에 알아보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적절한 여자라는 건 무슨 뜻일까? 아름다운 여자? 똑똑한 여자? 따먹을 만한 여자?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는 여자? 아무튼 그는 몰로시아를 우방으로 두길 원했고, 마케도니아와의 동맹은 우리에게도 나쁜 제안이 아니었으므로 결혼이 체결됐다. 그렇게 나는 이방인들의 왕국으로 시집을 갔다. 마케도니아에 도착하니 어째서인지 필리포스가 사모트라케에서 사랑에 빠져 신붓감을 데려왔다는 말이 퍼져 있었다. 아마도 그의 적절한 발언을 근위병이나 시종이나 다른 누군가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결혼식 전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요란한 굉음 속에서 벼락이 내 배에 떨어지는 꿈이었다. 그 때문에 큰불이 곳곳으로 번졌다가 사그라들었다. 오로지 신만이 내릴 수 있는 천재지변이었다. 나는 이 꿈을 주변에 말했고, 그들은 이것을 좋은 징조로 해석했다. 제우스가 내 배에서 태어날 아이에게 축복을 내렸다고 했다. 매우 용감하고 강인한 아들이 태어날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말하지 않은 얘기가 있었다. 내 꿈에서, 벼락과 더불어 피어난 불길은 사방으로 옮겨붙어 인근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야말로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불이 꺼졌을 땐 이미 펠라가 전부 불타버린 후였다. 그 속에서 나는 홀로 멀쩡하게 살아남아 있었다.

 

다행히 나는 아들을 낳았고, 내궁에서 나의 권위는 조금 높아졌다. 필리포스는 내게 에우리디케 대신 올림피아스라는 이름을 주었다. 일 년 후에는 딸이 태어났다. 그리고 한동안 필리포스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나는 알렉산드로스보다 먼저 태어난 아들 때문에 십여 해 동안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가 상당히 모자란 아이라는 것이 입증되고 나서야 조금 안도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느꼈던 저열한 만족감을 기억한다.

나와 필리포스는 알렉산드로스를 꼬마 아킬레우스, 꼬마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자기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 자신의 조상처럼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필리포스 사이의, 일종의 경쟁적인 놀이이기도 했다. 그 애가 어릴 땐, 필리포스가 붙인, 꼬마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는데, 가정교사 리시마코스가 포이닉스를 자처하면서 내 아들은 꼬마 아킬레우스로 굳어졌다. 졸지에 필리포스는 펠레우스가 되었는데, 그가 그 별명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내가 아들을 잘 키우려고 심혈을 기울이는 동안, 필리포스는 여기저기로 전쟁을 다녔다. 덕분에 내 꼬마 아킬레우스는 아버지보단 어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더 길었다. 마케도니아를 비웠던 필리포스는 메토네에서 한쪽 눈을 잃고 돌아왔다. 나는 필리포스에게 당신이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계승이 불안정한 마케도니아에서 왕이 갑자기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피바람이 불 테고, 아마도 왕위는 내 아들이 아니라 남편의 조카에게 돌아갈 테니까.

 

그 이후로 중요한 일들이 많았지만, 대체로 재미없는 날들이었으니 이야기를 건너뛰자. 알렉산드로스가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필리포스는 새로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마케도니아인 아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페르시아 원정을 앞두고 자식을 더 낳아야겠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그냥 신부가 마음에 들었던지, 그는 아탈로스의 조카딸을 아내로 맞기로 했다. 필리포스는 혼인이 결정되고 나서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내게 오랜만에 잠자리를 청했다. 딴에는 나를 달래려던 것 같다. 코웃음이 나왔다. 필리포스는 내가 그 어린애를 질투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탁월한 재능과 섭정, 군사 경력으로 이미 마케도니아군에서 크게 신뢰받는 내 아들을 두고, 앞으로 태어날 갓난아기를 견제하리라고 생각한 걸까? 후자는 완전히 틀린 예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가 우스운 짓거리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그는 메다와 새로 결혼한 직후엔 나를 이런 식으로 찾지 않았었다. 나와 결혼했을 때도 필리포스는 먼저 들인 세 아내를 굳이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간 나는 알렉산드로스의 어미였고 현재 마케도니아 왕비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필리포스는 나를 찾아온 이유를 존중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 표현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내 위치를 재확인하는 셈치고 그에게 응했다.

정사는 딱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다. 그는 행위가 끝난 뒤에도 자기 침실로 가지 않았다. 나는 발가벗고 누운 그를 내려다보다가, 충동적으로 꿈 얘기를 꺼냈다.

"언젠가 당신의 눈이 원래대로 되돌아오는 꿈을 꿨어."

나는 상처가 남은 필리포스의 오른쪽 눈을 매만지며 말했다. 필리포스는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신께서 치료해주시던가?"

"아마도." 꿈속 남자의 눈을 매일 최상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되돌리는 건 신들이나 할 법한 짓이었다.

"한쪽 눈으로 산 지 십 년이 넘었어. 이젠 되찾고 싶은 마음도 안 드는군."

"아쉽네. 예쁜 눈이었는데."

"그건 여자한테나 쓰는 표현이잖나."

나는 필리포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의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벌렸다. 오래전에 눈두덩이가 붙은 채로 굳어버려 눈구멍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필리포스는 기분 나쁜 듯 내 손을 쳐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의 그쪽 눈은 어디에 두고 왔어?"

필리포스가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메토스지."

"그래? 내 생각에는 아닌 것 같아."

필리포스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옆에 누웠고, 그가 고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중얼거렸다.

"어쩌면 코카서스일지도 몰라."

아니면 내 뱃속이든가.

 

필리포스는 죽은 아우다테가 가졌던 에우리디케라는 이름을 새로 맞은 아내에게 물려주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올림피아스였다. 신부가 새로운 이름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장인은 확실히 좋아했을 것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그 이름이 그에게 간 것을 반기지 않았다.

결혼 연회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와 아탈로스에게 반항했다. 그는 아가멤논에게 모욕당한 아킬레우스처럼 분노에 찬 채, 연회에서 있었던 일을 빠르게 설명했다. 그는 내게 마케도니아를 떠나자고 했다. 나는 아들을 앞에 두고 생각했다. 설령 내가 동조하지 않더라도 알렉산드로스는 혼자서라도 가출을 감행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가 이곳에 남아있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해진다. 나는 시종을 불러 말을 준비시키라고 일렀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의 풍경은 이전과 변함이 없었다. 남동생은 나를 반겨주면서도 마케도니아와 사이가 틀어질까 우려했다. 나는 알렉산드로스를 보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필리포스에게는 멀쩡한 아들이 하나밖에 없고, 그 아들은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만큼 명예와 명성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나는 나와 아들에게 가해진 모욕에 화가 난 것처럼 에페이로스에 일 년 반을 더 머물렀다. 그동안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로 돌아갔었는데, 또 아버지와 싸우고는 내게 편지를 보냈다. 한편 필리포스는 아들과 화해했지만, 나와는 화해할 계기가 없었거나 의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왕비를 영원히 친정에 처박아둘 수도 없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딸을 처남과 결혼시키기로 결정했다. 내 딸과 남동생의 결혼식은 여러 의도를 가지고 행해졌다. 나는 결혼식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에 승낙하는 답신을 보냈다. 나는 전령으로 알렉산드로스가 직접 내 서신을 전달하기를 요구했다. 내 아들은 편지를 받아가며, 곧 아버지를 따라 아시아 원정을 떠날 것이 무척 기대된다고 했다. 또 페르시아를 정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세상의 끝에 도달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나는 아들에게 그럼 코카서스 산맥도 지날 거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결혼식은 굉장히 성대하게 치러졌다. 필리포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결혼식보다 몇 배는 규모가 컸다. 유명한 배우들이 초청되고, 운동경기와 호화로운 연회가 예정되었으며, 아이가이 극장은 온갖 화려한 볼거리로 넘쳐났다. 비서에게 필리포스가 열두 신상과 함께 도열할 예정이라고 들었을 때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라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질 정도였다.

이 행사를 보러 헬라스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식의 주연은 신랑 신부가 아니라 필리포스였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사람들 앞에 나섰다. 신뢰받고 있다는 걸 과시하고 싶었는지 경호대까지 물리고서. 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필리포스는 갑자기 살해당했다.

 

내 아들의 친구들은 자객은 생포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배우지 못한 것 같다. 페르시아를 정복하겠다던 마케도니아 엘리트들이 이렇게 멍청하다고 믿는 게 더 나쁠까, 그들은 어리석지 않으며 지극히 계획적으로 행동했다고 믿는 게 더 나쁠까? 결국 국왕 시해를 주도한 진범은 밝혀지지 못했다. 온갖 추측과 심증이 오갔다. 의문의 칼은 내 목에도 들이대졌다. 나는 코웃음치며 변론했다. 내가 남편을 죽이고자 한다면, 더 적절한 시기와 수단과 장소가 셀 수 없이 많은데 왜 하필 이때 이런 짓을 벌였겠나? 마케도니아인들은 딱히 납득한 것 같진 않았지만, 어쨌든 알렉산드로스가 이 일을 페르시아의 소행으로 공표하면서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내 아들은 왕좌가 비자마자 핵심 장교들과 군대를 포섭하고 곧바로 정적들을 숙청할 만큼 총명했다. 나도 손에 피를 좀 묻혔다. 비록 내 알렉산드로스는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필리포스는 자신의 조상들처럼 아이가이 왕릉에 묻혔다. 나는 필리포스가 땅에 묻히기 전에 그의 오른쪽 눈 위에 동전을 올려놓았다.

 

알렉산드로스가 대업을 이루러 마케도니아를 떠나기 전에, 나는 그를 불러 짧게 모자간의 시간을 보냈다. 아들을 껴안고 그의 머리에 키스하며 건강하라고, 반드시 오케아노스를 보고 네 이름을 세계에 드높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따뜻한 눈으로 오랫동안 보지 못할 어머니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연달아 포옹했다.

언젠가 그에게 속삭이듯 물어본 적이 있다.

"헤라클레스가 프로메테우스를 죽였니?"

솔직히 단 한 번 꾸었던 꿈에 왜 이렇게까지 연연하는지 나로서도 잘 모르겠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리둥절하게 답했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헤라클레스가 죽인 건 독수리잖아요."

왜 그때 생각이 났을까.

나는 포옹을 풀고 아들의 뺨을 쓰다듬었다.

"자주 편지하거라, 내 꼬마 아킬레우스. 어디에 있든 네가 보고 싶을 거야."

알렉산드로스가 많은 감정이 담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섰다. 밖에는 사리사를 든 병사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사열해 있었다.